14년차 맥주 블로거 입장에서 왠만한 맥주에는
크게 관심이 생기거나 호기심이 무뎌지지만,
오늘 시음하는 Piwo Z Grodziska 는 늘 궁금했던
역사 속 맥주라 상당히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맥주 자체는 폴란드(Poland)의 출신입니다.
주변국이 독일, 체코라 맥주 소비가 많지만
상대적으로 고유 맥주 스타일은 많지 않은데,
이번 회차의 주인공인 Grodziskie 가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폴란드의 고유 맥주스타일입니다.
Piwo Grodzieskie 는 Grodzisk Wielkopolski 라는
폴란드 서부에 위치한 도시가 원산지인 맥주로,
알콜 도수는 3%~5% 에 이르는 금색 빛의 에일입니다.
100% 훈연된 밀맥아만 사용하여 만드는게 큰 특징이며,
홉은 폴란드 출신 홉인 루블린(Lublin)품종을 씁니다.
분류를하면 상면발효 밀맥주의 한 일종이기는하나
독일 밀맥주처럼 효모에서 나오는 발효맛은 없습니다.
하지만 병 안에 효모가 담겨있어 병입 발효를 거치며,
그 덕에 눈에 띄는 탄산감을 가진 것도 주요 특징입니다.
Piwo Grodzieskie 는 대략 1300년대 부터 만들어졌으며,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5년까지 꽤 잘 나가던 맥주로,
미국이나 중국, 아프리카 등 37개국에 수출되었습니다.
폴란드에서도 손 꼽히는 맥주 도시인 Grodzisk 였으나,
2차 세계대전이후 폴란드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양조장이 국유화되었고, 이후 사회주의 몰락과 경제난으로
1994년 마지막 Piwo Grodzieskie 가 만들어진후 자취를 감춥니다.
제가 Piwo Grodzieskie 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2011년이고
2013년 독일 베를린 체류시절에 네덜란드 양조장에서 만든
Grodzieskie 스타일 맥주를 마시면서 언급한 것을 참고해도
'명맥이 끊어져서 구할 수 없는 맥주가 되었다' 고 합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쯤부터 원조 Piwo Grodzieskie 가 부활했고,
현재 폴란드의 맥주 바틀샵에서 구할 수 있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Browar Grodzisk 양조장은 Piwo Grodzieskie 에만 그치지 않고
아메리칸 페일 에일이나 NE IPA, 발틱 포터 등등도 만들고 있습니다.
트렌디한 크래프트 맥주들을 폴란드에서 다루는 양조장이면서
사라졌던 조국의 유서깊은 맥주를 복원한 곳이라 호감갈 수 밖에 없네요.
기반은 밀맥아가 들어간 밀맥주라 탁한 밝은 금색입니다.
향에서는 온순하고 젠틀하게 나오는 오크 스모크 향과
은은한 페놀같은 면모에 꽃, 허브 같은 향도 나왔고,
미미한 수준의 황과 같은 향도 있는 독특한 맥주였습니다.
탄산기는 많은 편이라 여름에 청량하게 마시기 좋고,
질감이나 무게감도 기본적으로 3% 초반의 알콜 도수라
가볍고 산뜻하며 얇고 섬세해서 마실 때 부담이 없습니다.
맥아에서 나오는 단 맛은 거의 없이 말끔-깔끔합니다.
깨끗한 바탕에 마일드한 훈연 맛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옆 나라 훈연 맥주처럼 노골적인 훈연미를 자랑하진 않습니다.
효모에서 나오는 발효 맛은 딱히 없지만 바이젠을 마셨을 때 오는
정향류의 페놀이라 불리는 맛이 이따금 느낄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훈연 속성과 관련되어 나오는 맛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맥주의 쓴 맛 수치는 27IBU 라고 적혀있고 맥주가 담백하고
개운하지만 쓴 맛을 특별히 남기고 있는 맥주는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홉의 느낌인 풀, 꽃, 허브와 겹쳐져서 은은함을 선사했고
나름 제 1의 맛인 스모크계통과 낮은 수준의 묘한 밸런스를 구축하며,
마시고 나면 희미하게 남는 곡물류의 고소한 느낌이 있긴 합니다.
가볍고 산뜻한 스파클링 스모크드 윗비어를 마시는 느낌으로
생각보다도 더 맥주가 섬세한 맛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극적임과는 거리가 멀어서 매력적이었습니다.
시음성이 좋으며 국내에서도 이 정도로 잘 만들어진다면,
스모크계 맥주의 단점인 여러 잔 마시기 부담스럽다는 면을
나름 타파할 만한 특성의 제품이었습니다. 마음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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