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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나치전당대회 역사박물관 방문기 - 뉘른베르크

by 살찐돼지 2009. 6. 22.

1933년 독일의 정권을 잡은 히틀러의 나치정권은 1933년부터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인 1938년까지
뉘른베르크에서 나치전당대회를 개최합니다.
나치전당대회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국민들과 대외적인 정치선전을 위한 성격이 강한 대회였으며
히틀러의 연설과 군인들의 퍼레이드로 일주일 동한 치뤄지고는 했습니다.




뉘른베르크시의 위성사진입니다.
오른쪽 하단의 푸른색 큰부분이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장입니다.
그에 반해 뉘른베르크의 구시가지는 중앙의 푸른지역입니다.
구시가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어마어마한 규모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히틀러가 1933년 정권을 잡기 전 옥중에서 작성했다는 저서 'mein Kampf'(나의 투쟁) 입니다.
이 저서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히틀러는 유태인과 집시, 유색인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이미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부터 견지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친위대인 SS와 SA


나치전당대회가 열렸던 넓은 평지의 현재 모습입니다.
저 평지에 대략 50만에 달하는 군인들이 사열하여
히틀러를 중심으로 전당대회를 펼쳤습니다.
전당대회의 가장 큰 성격은 웅장함인데,
퍼레이드에서 그 성격을 짐작 가능합니다.

박물관에서는 유대인박해와 학살에 관한 테마 또한 빼놓지 않았습니다.
1. 그당시 독일 초등학교에서 실시된 유교대인박해에 관한 교육
2. 유대인이 운영하는 점포에서는 물건을 사지 말자는 선전배지.
3. 나치와 2차세계대전에 관한 영화에서도 주로 등장하는 권총으로 유대인을 학살하는 장교.

훗날, 나치 패망 후 연합국에의해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핵심인물은 모두 사형에 처했지만
도처에서 자행된 소규모의 학살을 저지른 장교와 병사들에 관한
처벌수위를 정하는 것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을 받고 어쩔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학살이 단순히 명령에 의해서만 이행되었다고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재판결과는 무죄로 판명되었습니다.

독일남자는 현재 9개월의 군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군의무를 이행하는 독일남자가 스스로
사람을 죽이는 무기인 총을 들수가 없다고 의견을 피력하면
그는 사회복무제도로 군의무를 대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독일정부가 개개인의 국민의 신념에 맞춰주며 관용을 베푸는 이유는
세계대전당시 신념이 아닌 명령에 의해 학살을 했다고 하는 장교들처럼
국민들에게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나치정권이 꿈꿔온 세계에서 가장 큰 회의장의 모습입니다.
외부에서 보면 콜로세움과 같은 형태이고,
외벽은 전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내부의 이동통로 또한 화강암으로 장식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그 웅장함과 거대함에 압도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허술하고 미적지근한 큰 건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치정권이 너무 빠른시기에 거대한 건물을 건축하다 보니
겉모습은 위대한 건축물들을 모방할 수는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것들에 담겨있는 하나하나의 장인정신은 모방하지 못했습니다.
조각이나 장식, 양식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화강암만 쌓아 올린 건물이 되었습니다.



외부의 웅장함과는 달리 내부는 매우 초라한 모습입니다.
나치는 이 회의장에다가 돔경기장처럼 지붕을 덮으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하여 그만 두었고
나치정권 이후에도 현실성과 실용성 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건물의 결정체로 남아
철거하는데 드는 금액이 어마어마 하여 부수지도 못하고
다른 용도로 이용하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2001년 나치전당대회 박물관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폐차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쓸모없는 건물에 필요한 화강암을 채취하기 위하여
강제수용소 내 채석장에서 화강암을 채취하는 유대인들.
소량의 음식만 먹으며 나무로 된 신발에 장갑도 없이  
일을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전당대회의 퍼레이드가 시작되면 끝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 종착지점이었던 Zeppelinfeld 와
히틀러가 연설을 펼쳤던 Zeppelintribuene입니다.

이 또한 규모가 어마어마하여 30만명정도가 수용가능하다고 합니다.
둘째 사진의 철문으로 나온 히틀러는 가운데 연설대로 내려가
자신을 바라보고 좌우로 사열해있는 군인들과
열광하는 국민들에게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소의 중심에 서서, 강하고 굳건한 목소리로
연설을 하는 총통 히틀러의 모습은 독일 국민과 군인들에게 
칭송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점을 나치정권은 노리고 전당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맨 아랫 사진은 나치패망후 미군이 무대 꼭대기에 서서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입니다.
당연히 이 곳은 연합군의 집중포격의 대상이 되어
지금은 그 흔적을 매우 조금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죠.

제가 대략 4시간을 돌며 관람하였지만
절반도 관람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 규모에 더 놀랐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패망후 독일국민들이 역사청산과 후대의 독일국민에게
이와 같은 큰 범실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도 숨기고 싶을 역사를
박물관 까지 만들어 자국민과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수많은 학살과 전쟁을 자행하고서는
원자폭탄 두 대를 맞고 전쟁의 희생양인척
행동하는 옆나라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라 느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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