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받으면 뿌듯한 소맥 자격증?

 이번 주 월요일 국내의 한 맥주회사가 소맥(소주+맥주)을 잘 섞는 시민들을
이벤트성 행사를 통해 추첨하여 1년간 소맥 자격증을 발급한다는 공고를 붙였습니다.

- 소맥 자격증 이벤트 링크 -

작년 국내 맥주 1위 기업과 소주 1위 기업간의 인수합병을 통해 하나가 된 H-J 기업은
더 많은 맥주와 소주의 판매량 촉진과 그것을 병행(?)할 수 있는 소맥을 장려하기위한
일환으로 이와 같은 이벤트를 기획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업이란 당연히 수익을 내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고, 이 행사 또한 마케팅의 일종이며,
우리나라의 폭탄주 술 문화를 제대로 파악한.. 센스있는 이벤트라고 보여질 수도 있지만..

불과 얼마 전인 2011년 연말즈음에는 직장인들이 송년회, 특히 술 자리에서 연신 이어지는
폭탄주 세례가 싫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좋은 쪽으로 바꾸자는 자성이 목소리가 나옴에도..
국내 굴지의 주류회사에서는 소맥 전용잔까지 만들어 오히려 이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 2011년 연말에 보도된 송년회 폭탄주에 관한 뉴스 -

그래요 회사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요..


- 주류회사가 소맥을 권유할 만큼 자신들의 맥주에 자신이 없나?

위에 서술했던 내용보다 개인적으로 저를 더더욱 실망시키는 사실은
스스로 공들여서 만든 맥주를 망치는 행위인 소맥제조를 기업에서는
씁쓸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벤트를 통해서 권유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저 또한 집에서 취미로 자가양조를 하고 있는데, 아무리 서툰 맥주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제 맥주에 맛과 향을 증진시키기 위한(코로나의 라임과 같이) 목적이 아니고,
그냥 소주를 섞는 것이라면 상당히 기분이 나쁠 것 같습니다.
맥주를 만드는데 제가 들인 시간, 비용, 체력등을 무시하는 것 같거든요.

원두를 직접 고르는 노력이 담긴 에스프레소 한 샷에 시럽을 왕창 넣든다던지..
싱싱한 재료와 데코레이션도 완벽한 파스타 한 접시에 고추장을 범벅하는 행위..
자부심과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들어낸 바리스타나 셰프라면 이 상황에 껄껄 웃을 수 있을까요?

'개인 입 맛의 취향이다, 난 소맥을 맛으로 즐기기에 별 문제 없다' 라고 생각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유명하다는 벨기에의 주류품평회에서 그들의 맥주가 단체로 상을 받았다고 
품질을 자랑하며 장인정신을 뽐내던 모습이 현재진행형인데..

그런 훌륭한 맥주들에다가 소주를 섞고, 또 그 레시피까지 알려달라니..   
이 기업의 행동이 상당히 모순적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으신지요?

그래요 회사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요..


- 그래 우리 술 문화니까, 우리나라 맥주니까..

분명 만족스럽게 국산맥주를 즐기시는 분들도 많고, 그래도 국산맥주를 옹호하는 분들의 의견으론
"그래도 국산맥주가 우리 한국사람의 입맛에 맞춘 맥주인데.." 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탄산을 꽉꽉 채워 목이 따가울 정도인데, 목넘김이 좋다고 포장하는 맥주.
맛의 빈약함을 감추기 위해 무조건 시원하게, 그것도 모자라서 잔을 얼리는 맥주.
어떤 재료를 쓰는지.. 어느정도의 비율로 맥아와 홉을 사용하는지 속 시원히 못 밝히는 맥주.

과연 국산맥주가 우리 입맛에 맞춘 맥주인지.. 아니면 가격적으로, 접근성 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 마시던 우리가 국산맥주에 길들여진 것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경쟁자가 없는 독과점의 국산 맥주시장에서 그들이 하는 행위는 곧 법이고 진리이니
그들이 공인해주는 '소맥 자격증' 을 받고 우리는 자랑스럽고 기뻐해야 할 것이며,
우리는 그들이 어떤 이벤트를 펼치든, 맥주를 만들든 그저 순응하고 적응해야 할 것입니다.
 
기호식품인 맥주이기에 맛과 품질, 그리고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과 기업들까지,
주관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 하더라도, 제 블로그에서 힐책하는 것을 가급적 삼가하였는데..

2009년부터 매년 여름 한정판 형식으로 스페셜 에디션도 발매하고, 변화를 보여주어
일말의 기대감이라도 갖게 하던 기업에 이번일로 배신감을 느껴 깊은 새벽에 글을 작성합니다.

그래요 회사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요..

Posted by 살찐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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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맥보이 2012.02.03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 맥주후진국의
    모습이네요ㅠㅠ
    쓸데없는 이벤트,유명연예인의
    고가출연료 광고말고 좋은맥주
    개발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으면 좋겠네요

  2. Beer Keg 2012.02.03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맥주 자체 맛으로..
    정공법에 의한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편법을 이용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씁쓸합니다.....;;

    • 살찐돼지 2012.02.03 2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Beer Keg 님 말씀대로, 편법을 이용하여 소비자의 눈막음을 하는 이벤트를 하는것이나..

      결국 시민들이 국산 맥주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기에 자꾸만 당하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아무리 성토해보았자 맥주회사는 신경도 안쓰고 하던대로 계속 하겠죠.. 정말 씁쓸하네요..

  3. midikey 2012.02.03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을 먹어봤으면 얼마나 먹어봤겠나 싶은 십대 ~ 이십대 초반 애들도 기본으로 소맥깔고 가더군요.하이트에서 처음부터 소맥을 장려했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맥을 많이 먹으니 기업도 - 마침 진로랑 완전 통합도 했겠다 - 덩달아 거기에 동조해서 같이 소맥문화를 띄우려는 의도가 더 괘씸합니다.

    • 살찐돼지 2012.02.03 2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로, 사람들이 형성한 소맥문화 때문에 기업도 동조한 것인가..

      기업이 조악하게 술을 만들어서 소맥문화가 생긴것인가..
      이미 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상황인지라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게 되었네요..

      그러나 확실한건 소주 1위 - 맥주 1위의 통합이니 이런 행위는 앞으로 더 가속화 될 것 같습니다...

  4. 삽질만 2012.02.03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씁쓸한 웃음이 나는군요...

    애시당초 퀄리티에 초점을 맞출거라고 기대는 안했지만...

    잘못된 음주문화가 트렌드가 되어버린...

    그걸 이용한 마케팅에 찬사를 보냅니다...;;;

    • 살찐돼지 2012.02.03 2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개인적으로 한국형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설치되어
      다양한 맥주들이 선보여지는 시기를 앞으로 10년 이후로 예상했는데..

      15~20 년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5. 해일링 2012.02.04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가 막히는 현실이죠.

    저런 회사가 한국맥주를 대표하고 있다는게 정말 좌절스럽습니다.

    • 살찐돼지 2012.02.04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매출이 높은 회사, 사람들에게 유명한 회사 = 좋은 맥주회사' 라는 공식은 의미 없어보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버드, 밀러, 아사히등은 세계 최고의 맥주 양조장이겠네요 ~

      베스트블레테렌, 도그피쉬헤드, 러시안리버같은 양조장에 비하면 그저 시시한 상업 양조장일 뿐인데요 ~

      때문에 저곳이 한국맥주 대표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죠 ~

      시간이 지나면 분명 한국맥주를 대표하는 양조장이 나타나겠죠 ~

  6. ... 2012.02.05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내 대형 주류회사들은 정말 몇몇 부분 빼고 그냥 답이 없죠. 맥주회사만 그런것도 아니고 싸구려 희석식 소주가 최고라지를 않나, 사케를 전통주로 둔갑시켜 팔아먹지를 않나...

    저런 회사들한테 내 돈 한푼도 주기 싫지만, 밖에 나가면 어쩔 수 없이 강요에 의해 희석식 소주와 국산맥주를 먹어야 하는 현실이 참 싫습니다.

  7. era-n 2012.02.08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더 답답한 건, 듀벨 같은 벨기에 고도수맥주를 소맥이랑 동급 취급한다는 것이죠.
    애초 소맥은 맥주하고 소주랑 섞은 칵테일 비슷한 다른 술이잖아요.
    우리나라에 맥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막연하면 이런 견해가 나오는 걸까요....
    요즘 술 좀 먹는다는 사람, 특히 보수가 아닌 진보로 소맥을 즐기더군요.
    사실 보수나 진보나 똑같은데 그걸 몰라요....-ㅅ-;;
    보수세대들이 즐기던 양주 폭탄주가 세대가 바뀌면서 소주 폭탄주로 바뀌었을 뿐인데....
    아직도 국내 음주문화는 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 살찐돼지 2012.02.09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전에 한 펍을 방문했는데, Boont ESB 설명을 폭탄주 맛 맥주라고 설명하더군요.

      영국 잉글리쉬 스타일 고유의 Extra Special Bitter가
      그저 우리나라에서는 폭탄주가 된다는데.. 좀 그렇더군요.

      술은 분위기 즐기고, 기분 전환을 위해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이런 경우를 보면 술에 관한 숙지도 필요한 듯 싶네요..

    • era-n 2012.02.14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대방에게 맛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막연하게 소맥맛, 폭탄주맛으로 일축하는 건 좀 그렇군요.
      마치 우리나라 대표음식인 김치를 외국인들한테 그냥 매운 음식이라고 소개하는 것 과 같네요....-ㅅ-;;

  8. 캬아 2012.02.16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이트맥주는 맥주회사가 아니라 (주)하이트진로라는 주류회사라 그런 것 같아요
    2012년부터 하이트와 진로가 서로의 유통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소셜미디어 마케팅 역시 '(주)하이트진로'를 묶어 연상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많이 진행하더군요.
    이 이벤트는 하이트와 진로가 아니라 하이트진로 각인시키기의 연장인 듯 합니다.
    소주와 맥주가 만나니까요.

    어자피 섞으나 섞지 않으나 그저 그런 거..
    전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보고 있답니다

  9. kihyuni80 2014.01.04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맛없는 국산 맥주와 희석식 소주...
    이 둘이 만나서 소맥이 된 건, 전 신의 한수라 생각합니다.
    맥주의 과한 탄산이 소주와 맥주를 섞을 때 줄어들고,
    희석식 소주의 첨가물에 의한 단맛은 밋밋한 맥주의 맛을 보충해주니까요.

    맛없는 것 + 맛없는 것 = 덜 맛없는 것을 만들어낸 씁쓸한 신의 한수...말이죠.